수돗물을 하루 동안 묵히는 미신, 당신의 방은 실험실이 아니다
수경재배나 홈가드닝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멍청한 지식 중 하나가 "수돗물의 염소를 날리기 위해 하루나 이틀 정도 대야에 물을 받아두라"는 것이다. 베란다도 없는 5평짜리 원룸에서 발 디딜 틈도 없이 커다란 대야를 바닥에 펼쳐놓고 물이 증발하기를 기다리는 그 처량한 광경을 당장 집어치워라. 고여 있는 물은 그 자체로 공기 중의 미세먼지와 세균이 내려앉는 완벽한 배양 접시(Petri dish)가 된다. 애초에 염소를 날리겠다고 받아둔 물에 곰팡이 포자가 먼저 증식해 버리는 촌극이 벌어지는 것이다.
실전 플랜테크에서 물을 묵히는 시간 낭비는 용납되지 않는다. 애초에 현대 정수장에서는 증발이 잘 되지 않는 '클로라민(Chloramine)'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며칠을 방치해도 독성은 그대로 남는다. 내가 실무에서 사용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고 즉각적인 화학적 타격이다. 약국에서 파는 100% 순수 비타민C(아스코르브산) 가루를 활용해라.
- 즉각적인 중화 타격: 10리터의 수돗물에 고작 0.1g(귀이개로 살짝 뜰 정도의 극소량)의 아스코르브산을 투여하고 저어주면, 단 3초 만에 염소와 클로라민이 식물에 무해한 염화물로 완벽하게 중화된다.
- 잔류 염소의 역이용: 사실 갓 받은 수돗물의 미세한 잔류 염소는 수경재배 수조 안의 초기 유해균 증식을 막아주는 천연 살균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극민감성 식물이 아니라면 오히려 직수(直水)를 바로 쓰는 것이 피티움(뿌리 썩음병) 예방에 유리하다.
- 온도 맞춤의 원칙: 물을 받아두는 유일한 이유는 '수온'을 실내 온도와 맞추기 위함이다. 겨울철 얼음장 같은 직수를 뿌리에 들이부으면 냉해로 즉사한다. 샤워기 온수 밸브를 미세하게 조절해 정확히 20도의 물을 바로 뽑아 쓰는 감각을 길러라.
방구석을 물바다로 만들며 하루씩 기다리는 미련한 의식은 버려라. 우리는 과학을 이용해 시간을 압축하고 공간을 절약해야 하는 1인 가구 농부들이다. 단 돈 만 원짜리 비타민C 가루 한 통이면 평생을 쓰고도 남을 즉각적인 수질 통제권을 얻을 수 있다.
당신 집의 '원수(Raw Water) EC'를 모르면 양액은 독극물이다
초보자들이 양액(영양제)을 제조할 때 흔히 저지르는 치명적인 실수는 뒷면 설명서에 적힌 '물 1리터당 2ml 투여' 같은 제조사의 가이드라인을 맹신하는 것이다. 나는 과거 오래된 빌라로 이사한 첫 달, 평소와 똑같은 비율로 양액을 탔다가 멀쩡하던 루꼴라 밭을 이틀 만에 노랗게 전멸시킨 적이 있다. 원인은 내가 이사 온 집의 낡은 배관에서 뿜어져 나오는 '원수(Raw Water, 아무것도 타지 않은 순수 수돗물)'의 상태에 있었다.
지역의 수질이나 건물의 노후도에 따라 수돗물 안에 이미 녹아있는 칼슘, 마그네슘, 그리고 녹물 찌꺼기의 양은 천차만별이다. 이것을 측정하는 기준이 바로 전기전도도(EC)다. 만약 당신이 키우는 상추가 EC 1.5 농도에서 가장 잘 자란다고 가정해 보자.
| 거주지 수질 상태 | 원수(수돗물) 기본 EC | 양액 투여량 (목표 EC 1.5 달성 시) | 결과 및 상태 |
|---|---|---|---|
| 신축 아파트 (수질 우수) | EC 0.1 | EC 1.4만큼의 양액 추가 필요 | 정상적인 영양 균형 및 성장 |
| 노후 빌라 (미네랄/녹물 과다) | EC 0.6 | EC 0.9만큼의 양액만 추가해야 함 | 설명서대로 타면 EC 2.0 돌파 ➔ 뿌리 괴사 |
설명서에 적힌 정량은 원수 EC가 0.0에 가까울 때를 가정한 이상적인 헛소리다. 내 집 수돗물의 기본 EC가 이미 0.6을 찍고 있는데, 거기에 1.5짜리 양액을 들이부으면 총합 EC는 2.1이 되어 식물을 소금물에 절여 죽이는 꼴이 된다. 당장 인터넷에서 만 원짜리 TDS/EC 측정기를 구매해라. 양액을 섞기 전, 아무것도 타지 않은 맹물의 수치를 먼저 재고 기록하는 것이 수경재배의 가장 위대한 첫걸음이다. 내 집 수돗물의 한계를 정확히 수치화하지 못하는 자는 영원히 식물의 잎끝이 타들어 가는 이유를 깨닫지 못한 채 애먼 조명 탓만 하게 될 것이다.
정수기 물을 먹이면 식물이 굶어 죽는 기괴한 역설
수돗물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한 일부 결벽증 환자들은, 자기가 마시는 고가의 '정수기 물'을 식물에게 바치는 호사를 누리려 한다. 특히 역삼투압(RO, Reverse Osmosis) 방식의 정수기 물을 수경재배에 쓴다면, 당신은 식물의 밥그릇에서 가장 중요한 뼈대를 빼앗는 만행을 저지르는 것이다.
수경재배용으로 시판되는 거의 모든 양액(A액, B액)은 '일반적인 수돗물'을 베이스로 사용할 것을 전제로 화학식이 설계되어 있다. 즉, 수돗물에 기본적으로 포함된 미량의 칼슘(Ca)과 마그네슘(Mg)이 식물 생장에 필수적이라는 계산이 이미 양액 제조 단계에서부터 깔려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당신이 정수기 필터로 이 미네랄마저 완벽하게 걸러낸 0.0 EC의 순수한 증류수를 사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식물은 세포벽을 형성할 칼슘을 구하지 못해 새로 나는 잎사귀들이 우글쭈글하게 꼬이거나 검게 타들어 가는 심각한 칼슘 결핍증(Tip-burn)을 앓게 된다.
식물은 인간처럼 불순물 없는 깨끗한 물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온갖 무기질과 미네랄이 둥둥 떠다니는 걸쭉하고 화학적인 '수프(Soup)'를 원한다. 정수기 물을 써서 성공하고 싶다면 칼슘과 마그네슘만 따로 농축해 놓은 '칼마그(Cal-Mag)' 첨가제를 돈을 주고 사서 비율을 완벽하게 재조립하는 지독한 수고를 감당해야 한다. 쓸데없는 결벽증을 버려라. 당신이 싱크대에서 무심코 틀어 재끼는 수돗물이야말로, 미량 원소들이 가장 안정적으로 배합되어 있는 공짜 베이스캠프임을 뼈저리게 깨달아야 한다.
📝 니우맘의 노트
과거 아끼는 몬스테라 알보를 수경으로 돌리겠다며 비싼 생수를 사다 바쳤던 내 무지몽매함이 새삼 부끄럽습니다. 식물을 아낀다는 명목 아래 내가 저질렀던 행동들은 철저히 '인간의 기준'에서 비롯된 폭력이었음을 물성(物性)의 차이를 통해 배웁니다. 오늘 저녁에는 화장실 수전의 레버를 미세하게 조절해 정확히 20도의 수돗물을 받아내며, 내가 다루는 이 액체의 본질을 한 번 더 차갑게 직시해야겠습니다. 무언가를 더해주는 것보다, 불필요한 감정과 과정을 덜어내는 것이 진정한 기술의 시작임을 다시금 마음에 새깁니다.



0 댓글
질문은 환영! 욕설, 홍보성 댓글은 삭제됩니다.